투자금 손실 숨기려 동창 살해하고 누명까지..'기막힌 반전'

<지난 3월 서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당사자들이 이천지역 고교동창생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 가운데 마침내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사건 이후 피의자 유씨의 진술에 따른 언론보도로 피해자에 대한 비난여론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지난 3개월여 간 故이용재(47)씨의 가족들은 슬픔보다 더 큰 고통을 겪어야했다. 숨진 이씨의 형 이익재(60)씨를 만나 장장 18시간에 걸쳐 진행된 재판에서 드러난 고교동창 살인사건 내막의 ‘기막힌 반전’을 들어봤다.>

 “이제 좋은 곳으로 가거라..내 동생아!”

‘죽은 자는 말이 없다더니…’ 이를 악용해 고교동창을 무참히 살해하고도 반성은커녕 온갖 거짓말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던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자 유모씨(47)가 법정에서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숨진 故이용재씨의 유족은 재판정에서 한(恨)서린 통곡을 쏟아냈고,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했던 이씨의 고교동창 20여명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로써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도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아야했던 동생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을까. 이씨의 형 이익재 씨는 차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어떻게 한들 동생의 억울한 죽음이 잊히겠습니까만, 이렇게라도 진실이 밝혀졌으니 다행이죠. 돌아가신 어머님이 도우셨습니다. 판사님, 검사님 고맙습니다.”

공교롭게도 장장 18시간의 재판이 진행된 지난 20일은 이씨 어머님의 기일이었다. 마침내 동생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진 새벽녘에야 가족들은 어머님의 제사를 모실 수 있었다.

 처참한 죽음에 악플까지..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3개월 

사건은 지난 봄 발생했다. 2011년 3월 31일 오전 11시 25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호프집에서 유씨는 고교 동창생인 이씨를 살해하고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두 사람은 이천의 모 고등학교 동창이자 사업파트너 관계였다. 유씨는 서울의 한 호프집으로 이씨를 불러냈고, 미리 준비한 흉기로 33차례나 복부 등을 찔러 숨지게 했다.

유씨는 경찰에서 “(이씨가)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를 때리며 돈도 빼앗았다. 책가방을 들게 하고 심부름도 시켜 나는 사실상 ‘가방모찌(수행비서)’였다. 졸업 후에도 나를 괴롭혔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유씨의 발언은 빠르게 인터넷을 통해 전파됐고, 인터넷상에는 숨진 이씨를 모욕하는 비난성 글들이 난무했다. ‘죽을 짓만 골라서 하다 죽은 것은 동정할 수 없다. 법의 온정을 기대한다’ ‘당장 유 씨를 풀어줘라’ ‘스스로 무덤을 팠다’ ‘조폭 같은 놈 잘 죽었다’라는 누리꾼들의 댓글은 유족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밝혀진 진실..잔인한 범행에 반성기미 없어 ‘중형’ 선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30여년간 괴롭힘을 당했다며 ‘가방모찌의 반란’으로 사건을 몰아가려 했던 유씨의 진술은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고교시절 자신을 괴롭혔기 때문에 살해했다’는 유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온천사업을 둔 이해관계 때문에 사건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유씨는 경찰조사에서 “고교졸업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던 이씨의 제안으로 스파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으나 이 또한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씨 측 증인으로 나선 20여명의 동창 및 지인들은 “유씨는 고교졸업 후 이천을 떠나 지난해 9월 두 사람이 동업을 하기까지 단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으며, 고교시절 괴롭힘이나 겁박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날 법정에서 김민아 검사는 이씨가 칼에 찔릴 당시 CCTV 장면을 재생했다. 유씨가 저항하는 이씨 배에 미리 준비해 온 회칼을 찍어 댔다. 숨진 이씨 앞에서 유유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다가오자 이씨 배에 다시 한 번 회칼을 꽂았다.

김 검사는 이어 유씨의 계좌 추적 결과를 공개했다. 온천 계약금으로 이씨가 유씨에게 건네준 9억6000만 원의 흐름이었다. 유씨는 이씨를 죽이고 경찰에 체포된 지 3시간도 안 지났을 무렵 증권계좌에 남아있던 3억4000만 원을 자신의 동생들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배심원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받은 돈을 주식에 투자해 1억 원의 손실을 본 사실도 확인됐다. 또 유씨가 구치소 접견실에서 ‘주식 손실 때문에 죽였다고 그러면 나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이야’ ‘주식 손실금 1억 때문에 죽였다 그러면 안 되니까 공탁을 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도 공개됐다.

검사는 결국 “이번 사건이 ‘가방모찌의 반란’이 아닌 금전문제에서 비롯된 계획적 범행으로 엄벌이 필요하다”라며 유 씨에게 무기 징역을 구형했고, 21일 오전 2시 30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정영훈)는 유씨에게 살인 혐의로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정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라며 “동업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점은 인정되지만 구타나 폭행을 당했다는 입증에 소명이 없다”라고 밝혔다. 또 “어떤 사유에 있어서도 생명을 존중해야 하며 함부로 박탈한 것은 옳지 못한 선택”이라고 피고인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저작권자 © 시사이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